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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반지  ... 1535 Hit(s) at  2013/05/27



      


꽃반지

                                           김태인

여름 날 소나기 내리는 날이면 남자, 여자 갈림 없이 함께 모여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고 홀딱 벗은 채로 동네를 뛰어 다녔다. 때로는 마을 앞 냇가에 나가 텀벙, 텀벙, 첨벙, 첨벙 추루루, 찰찰찰 송사리, 붕어, 버들치 등. 물고기를 몰며 정신없이 놀고 또 놀았다. 숯덩이처럼 검게 그을린 아이들은, 꼬르륵, 꼬르륵 이윽고 뱃속에서 거듭 경고음이 울려야지 산 넘으려는 태양의 등을 억지로 붙잡아 산봉우리에 묶어둔 다음 급히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두렁이 반듯, 반듯하게 그어진 논이 펼쳐져 있고 그 넘어 계단식 밭이 가물가물 보이기에 비교적 시원하게 트인 앞 쪽과 대나무 숲과 이어진 그다지 높지 않은 뒤편 산 사이에 자리한 아담하고 고즈넉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가깝거나 먼 친척 일곱 가구 같은 성씨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편하게는 한, 두 살 터울의 천진한 아이들과 어렵게는 아래 위 아홉 살 터울의 형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 중 마을 입구 첫 집에 살던 동글동글하게 생긴 여자 아이가 있었다.

산과 들이 초록에서 더욱 짙은 검 초록으로 칠해지던 무렵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다함께 모여 들판에 나가 이리저리 새집을 찾아 뛰어다니던 중 이었다. 정신없이 풀 섶을 헤치며 걷던 여자아이의 눈길이 한 곳에 머무는가 싶더니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이는 풀밭에 쭈그리고 앉은 체 무언가에 집중했다. 동글동글한 여자아이였다. 앞서 걷다 궁금했던 사내 녀석이 방향을 틀어 여자아이에게 다가간다.

토끼풀 군락이었다. 열중이던 아이가 다가오는 사내아이의 손을 갑자기 잡아끌어 멈춰 세웠다. 그리곤 자신 쪽으로 녀석의 손목을 끌어 당겨 묘하게 변화된 꽃을 조심조심 손목과 손가락에 묶어준다. 이윽고 만족한 듯 아이는 밝은 표정으로 사내 녀석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눈동자를 맞춘다. 유난히 크던 여자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순간 더욱 반짝였다. 사내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마주보며 그저 웃고만 서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히 바라보던 녀석의 반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빨개진 양 볼 사이의 입을 삐쭉이다, 아쉬움인지, 채념인지, 타박인지 모를“흥” 이라는 알듯 모를 듯, 콧소리 한 마디를 내 뱉곤 이내 친구들 쪽으로 여자아이는 달려가 버렸다. 이후, 여자아이에게서 오빠라는 호칭을 다시 듣지 못 했다. 사내 녀석 국민학교 2학년, 여자아이 1학년 이었다.

 

 
사내 녀석이 중학교에 다니다 이사를 가는 그 날까지도 녀석과 여자 아이의 사이는 서먹했었다. 성인이 된 이 후 집안 행사가 있는 날 그들이 가끔 얼굴을 마주친다. "오빠 안녕" " 그래, 잘 지내니?" 호호호, 하하하 우리는 함께 웃는다. 

Info
  비몽사몽 (EXP 17)
  Homepage : blog.daum.net/thein6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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