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 입큰 추억의 이야기 #1 > 추억의 이야기 [2012.02.20]      [이미지만보기]

* 본 화보는 일기예보님의 추억의 조행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자라섬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십여년 전입니다.

다니던 직장에 스트라이크를 일으켜 짱으로 있으면서 많은 직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관리자들의 설득에 모두가 등을 돌렸고...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그저 안위하는 모습에 저와 몇몇 동료들만이 그 회사를 팽개치고 나왔습니다.

배신감도 들었고, 허탈감도 들었고, 세상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며칠을 쉬면서 충전을 하고 있을 때,

"친구야~ 오늘은 낚시나 따라와라~"

할 일이 없던 차, 몸만 오라는 말에 그저 달랑 따라나섰습니다.


청량리에서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기대어 그냥 술 한 잔 마시러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낚시를 구경이나 할 줄 알았으니, 낚시가 뭔지... 뭐땜시 저러고들 있는지 몰랐으니 말이지요...

가평역에서 내려 하룻밤 지샐 것들을 준비하고,

낑낑대며 걸어 들어간 곳은 자라섬.

당시 자라섬에는 골재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리고 민가 한 채, 허름한 매점 하나...

친구가 자리한 포인트는 바로 그 매점 앞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심심할까봐 그라스대 칸반 하나 빌려주고 꽂아준 곳도 매점 앞...






자라섬 포인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U자형 수로가 나있는 곳의 수초대를 산란기에 공략하면 좋은 조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산란기도 끝난, 6월 초순이었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낚시보다는 낮잠을 즐기다가 저녁 무렵부터 슬슬 시작하는, 밤낚시 철이었습니다.

저야말로 낚시할 기분도 아니고, 뜨겁고 해서 빈둥거리고 있다가,

매점에 음료수나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을 하나 데리고 있는 매점의 젊은 여인...

정갈하고 단아한 미모의 여인이었습니다.

수작을 걸어볼까 생각했지만 말을 건네도, 그저 눈으로 가리킬 뿐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의 눈길은 어딘가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좀 이상하게 여겼지만, 의외로 시원한 음료수를 받아들고 그냥 제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을 차려서 술을 곁들이고, 옆에 계시던 분과 새벽까지 술잔을 나누었습니다.

자라섬에 여러번 출조를 하셨던 그 분과의 대화 중에 매점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들었습니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 낚시를 좋아하던 남편을 따라 물가에서 슬픔을 이겨내고 있던 여인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술을 마시고 밤안개를 온몸으로 맞으며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들어 버렸는데,

누군가 바닥에 두꺼운 박스를 깔아주었더군요.

같이 술마시던 분은 이미 철수하셨고, 친구는 일찍 일어나 낚시에 열중이었습니다.

쓰린 속에 물이나 마시러 매점에 갔더니,

"괜찮으세요?"

"예? 아, 예...."

...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던 여인...

말을 못하는 줄 알았더니...?

그리고는 어제의 그 어딘가에 시선을 꽂아 버렸습니다.






친구는 입질이 없다고 자리를 U자형 수로 입구편으로 옮겼습니다.

그 옆에 빌려 얻은 칸반을 치고,

"찌 올리면 채라~"

하고, 친구는 매트를 들고 미류나무 밑으로 부족한 잠을 자러 갔습니다.


뜨거운 햇살에 지쳐갈 무렵,

냅다 큰 지렁이를 발로 밟고 (당시 징그러워서 만지기가...)

바늘에 끼우는 게 아니라 걸어서 칸반대를 대충 던졌는데,

저의 그라스대의 찌가 꿈틀거리며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콩당거리는 가슴을.... 그리고,냅다 챔질~!!

“덜커덕~!!”

당황 황당... 안절부절...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친구가 펼쳐놓은 낚시대를 휘감고,,,

돌고 돌아 끌려나온 강붕어... 29.5cm 의 준척....

"야,야~~얌마, 일나밤마~!!"

"어~,왜~애??"

"얌마, 대따 큰놈 잡아썸마~!!"

"뻥치지맘마~~"

"와서 봠마~!!"


그렇게, 그래서, 낚시를...


철수길에 매점에 들러 여인에게 음료수 사서 마시고, 붕어를 보여주었더니

환한 표정으로

"오늘 젤 큰 거 잡으셨네요~"

"그래요??"


유월의 태양이 이글거리는데,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에고~ 힘들다 힘들어"

"그래도 너는 잠이라도 잤잖어~"

"넌 안잤냐?"

"날밤 깠지 뭐~"

"자슥 그러면, 매트나 빌려주지~?!"

"박스 깔고 잤잖어~! 그거 매점 아줌마가 갔다주길래 내가 깔아줬담마, 어제 술 무지 마시더구만~?!!!"

"뭐~??...."


그 여인의 시선이 돌아오는 길을 자꾸만 되돌리고 있었습니다.

아주 멀리 그리움 가득한... 슬픈 눈빛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여인은 낚시꾼들을 위해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라섬에 가면, 그곳에서 지렁이며 음료수, 라면을 사고 김치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짐을 가볍게 꾸려서 출조해도 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여인의 시선이 머물던 곳은

다름아닌 낚시꾼의 찌였습니다.

낚시꾼과 더불어 함께 낚시를 하고 있었던 셈이었지요.






몇 년이 지나

봄햇살을 받으며

행여나 하여 찾아간 자라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조를 나온 자동차들만 비뚤비뚤 세워져 있을 뿐...

변함없이 북한강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한 자리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나긴 기다림에 빠진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 2003년 12월 4일... 일기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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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입큰멤버] 일기예보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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